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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0 vs r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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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108루이나 해군이 치른 수업료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함정 손실 자체는 크지 않았으나, 개전 벽두의 대응 실패는 함대결전 교리의 파산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결전을 위해 아껴 둔 주력 함대는 정작 결전이 벌어질 때 이틀 늦게 도착했고, 그 사이 전략 지도는 돌이킬 수 없이 바뀌어 있었다. 노르웨이 상실로 북방 초계망의 전제가 무너지면서, 이제 독일 함대는 피오르에서 출격해 하루이틀 항해로 루이나의 경동맥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109109=== 위장순양함과 첫 습격 (1940년 5월~8월) ===
110노르웨이 전역으로 대형함 대부분이 수리 독에 들어간 1940년 늦봄, 통상파괴전의 첫 주역으로 나선 것은 뜻밖에도 전함이 아니라 화물선이었다. 독일 해군은 쾌속 화물선을 개조해 구식이지만 경순양함급의 15cm 포 6문을 화물창 격벽과 가짜 갑판실 뒤에 숨기고, 어뢰발사관과 기뢰, 수상 정찰기까지 실은 위장순양함들을 차례로 출항시켰다. 겉보기에 이들은 어느 항구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중립국 상선이었다. 선체 도색과 가짜 굴뚝, 목재 구조물로 실루엣을 바꾸고, 중립국 국기와 위조 선적 서류까지 갖춘 이 배들은 필요하면 하룻밤 사이에 전혀 다른 배로 '변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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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전술은 단순하고 잔혹할 만큼 효과적이었다. 독립 항행 중인 상선에 평범한 상선인 척 접근한 뒤, 사거리 안에 들어오면 위장을 걷어내고 국제신호기로 정선과 무선 침묵을 명령하는 것이다. 응하면 승조원을 포로로 옮기고 배를 격침 혹은 나포했고, 조난 신호를 타전하려 들면 즉시 포격이 쏟아졌다. 1940년 5월부터 8월까지 넉 달 동안 위장순양함 5척은 대서양 남부와 랜드 내해 어귀에서 상선 40여 척, 약 25만 톤을 격침하거나 나포했으며, 그중 한 척은 연합군 초계망이 조밀한 랜드 내해 남부까지 침투해 '유령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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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톤수보다 무거운 것은 심리적 타격이었다. 위장순양함의 본질은 "모든 상선을 잠재적 군함으로 만드는 것"이었고, 이는 바다 위의 신뢰 자체를 무너뜨렸다. 상선들은 수평선에 낯선 배가 보이면 일단 침로를 꺾었고, 조난 신호에 응답하러 가는 것조차 함정을 의심해야 했다. 해운 보험료는 항로에 따라 개전 전의 열 배까지 폭등했으며, 중립국 선사들이 루이나행 수송 계약을 기피하거나 위험 할증료를 요구하면서 수입 물가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격침 상선 몇십 척이 아니라 '어디에도 안전한 바다가 없다'는 인식 그 자체가 무기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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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연합군의 대응은 헛손질의 연속이었다. 위장순양함의 정체가 보고될 때마다 순양함 수색대가 출동했으나, 보고되는 인상착의가 매번 다른 데다 습격 지점과 발견 지점이 수천 킬로미터씩 떨어져 있어 수색은 번번이 빈손으로 끝났다. 6월에는 루이나 무장상선순양함 1척이 위장순양함과 조우해 포격전을 벌였는데, 상선끼리 서로 포를 쏘는 이 기묘한 결투는 양측 모두 화재를 일으킨 채 헤어지는 무승부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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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전환점은 [[8월 17일]]에 왔다. 랜드 내해 한복판에서 위장순양함 1척이 등화를 밝히고 항행 중이던 루이나 여객선을 야간에 뇌격, 격침시킨 것이다. 위장순양함 측은 등화관제 위반 선박으로 오인했다고 주장했으나 여객선은 국제 규정대로 조명을 켠 상태였고, 승객과 승무원 400여 명 중 구조된 것은 절반이 되지 않았다. 희생자 명단에 어린이 수십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루이나 여론은 폭발했다. 신문들은 이를 '학살'로 규정했고, 그때까지 전쟁을 남의 일처럼 여기던 중립 성향 여론까지 단숨에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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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정치적 후폭풍은 해군의 풍경을 바꿔 놓았다. 사건 2주 만에 의회는 그동안 해운업계의 반대로 표류하던 호송선단 의무화 법안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고, '방패 계획'의 호위함 건조 예산은 심의 없이 증액되었다. 해상교통로 전담 사령부의 창설도 이때 확정되어, 연말 [[테오도르 란츠]]의 취임으로 이어지는 길이 열렸다. 훗날 란츠는 회고록에서 이 시기를 "우리에게 필요했던 모든 권한은 유족들의 분노가 만들어 주었다. 그것이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다"라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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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한편 위장순양함들의 활동은 가을로 접어들며 서서히 한계를 드러냈다. 호송선단화가 진행되면서 손쉬운 사냥감이던 독립 항행선이 줄어들었고, 연합군이 상선 검문 절차와 항로 통제를 강화하면서 위장의 효력도 떨어져 갔다. 그러나 이들이 넉 달간 증명한 사실, 즉 소수의 습격함만으로도 루이나의 해상 경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은 독일 해군 수뇌부의 확신을 굳혔다. 위장순양함이 이 정도라면, 진짜 군함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수리를 마친 장갑함들이 출격 준비에 들어간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110123=== 장갑함 출격과 선단 학살 (1940년 9월~11월) ===
111124=== 란츠 개혁: 호송선단 체계의 확립 (1940년 12월~1941년 1월) ===
112125=== 뤼첸스의 내해 침입 작전 (1941년 1월~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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